존경하는 임한종 의장님 그리고 의원 여러분 제90회 임시회를 맞이해서 40만 서초구민의 복지증진과 구정의 발전을 위해서 연일 의정활동에 노고가 많으신 의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전에 박찬선의원님을 비롯해서 정길자의원님, 장경주의원님 그리고 허명화의원님 등 네 분께서 구정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 질책과 좋은 대안까지 제시해 주신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구 행정을 이끌어 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의원님들께서 총 24건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제가 모두 답변을 드려야겠지만 그중 상세한 관계는 소관 국장으로 하여금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박찬선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서초구소식지의 제작비용과 광고료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서초구소식지 다시 말하면 반상회보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매월 반상회보를 제작하고 있는 서초구소식지는 우리 구민에게 구정, 의정활동 그리고 새로운 생활정보와 건강정보 그리고 책정보를 널리 알려서 구정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구민의 알권리를 충족해 주고 또 구민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갖가지 교양자료를 총결합해서 구 예산으로 발행하고 있는 반상회 회보지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가 그 동안 죽 반상회 회보지를 발행해 왔습니다만, 이것을 냉철하게 반성을 해 보면 반상회를 열고 있지 않는 그런 통.반에서는 그 반상회보지가 사장되고 해서 이 자리에서 많은 질책과 아울러서 개선대책을 제시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하면 읽혀지는 찾아서 읽어보려고 하는 반상회보를 마련할 수 있을까 늘 고심해 왔습니다만 어려운 예산형편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가지고 반상회보지를 발행하다 보니까 이것이 과연 올바른 예산집행이냐 해서 원래 구청이나 시청이나 국정의 여러 가지 홍보인쇄물에는 광고게재를 사실상 자제해 왔습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것이 하나의 경영마인드라고 해서 웬만한 자동차의 하나까지 영수증 하나까지도 광고 스폰서를 구해서 죽 실어오다가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궤도에 오르고 나니까 그런 것을 없애자 해서 종전에는 집에 있는 뺀지조차도 특정 업체에서 제작해 주는 것을 가지고 생활 편의시설을 만들어 왔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단계에 와서 저희 반상회보지 같은 데에 광고게재라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고 왔습니다. 작년, 금년 2개년만 하더라도 1억원 이상의 예산이 반상회보지 제작비로 책정되어 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읽혀지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 또 반상회보지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단순히 저희가 발행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너무나 형식적인 그런 반상회보로 전락해서 어떻게 하면 이것을 짜임새 있고 읽혀지는 것으로 만들까 해서 예산도 절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유료광고를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발행면수와 부수도 대폭 조정해서 종전에 4면에 3만부 발행에서 지금은 16면에 10만부를 발행해서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측에서 얘기하기를 자기네 중앙 대 일간지가 서초구 전체 판매되는 신문보다도 서초구의 반상회보지가 더 많이 나가는데에 대해서 항상 격려와 아울러서 부러워해 왔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이러한 찬사와 함께 과연 이 반상회지를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겠는가 해서 '98년 1월부터 금년 4월까지 제작업체를 갑에서 을로 변경하면서 많은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자 했었습니다. '98년 1월부터 7월까지 제작을 맡아온 업체는 현대문예사와 한양칼라로서 그 당시에는 단순히 구정을 알리는 반상회회보 성격으로 흑백 4면에 3만부를 발행하는 소규모 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산절감 차원과 아울러서 IMF 경제 어려움을 극복하는 수단과 또 알찬 지면을 만들기 위해서 '98년 8월부터 광고게재를 위해서 색도와 페이지수 그리고 부수의 대폭적인 증대로 인해서 소규모 업체에서 발행할 수 없었던 까닭으로 제작업체를 주식회사 손그래픽으로 변경했습니다. 그러다가 기획력이 뛰어난 영진문화사로 재변경해서 더 알차고 짜임새 있는 소식지를 제작해 왔습니다.
서초구소식지가 단순히 강제로 배부되는 기관지가 아닌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꼭 필요한 정보지로 거듭 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서 금년 4월부터 저희 반상회지가 1년여를 하다 보니까 어떠한 체제가 정비되고 페이지의 규모라든가 지면에 하나의 노하우가 축적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많은 인쇄물을 취급하는 그런 회사에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질문하신 박찬선의원님도 그런 차원에서 관심을 많이 가지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가 이것을 중앙일보에서 조달청 기준이하의 파격적인 제작비로 제작은 물론이고 각 동사무소까지 직접배달한다는 조건과 아울러서 중앙일보 인쇄시설을 이용한다고 하는 너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서 저희가 중앙일보사로 제작회사를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이 중앙일보사에서 제작하고 난 후부터 저희가 어떠한 조건을 내걸었느냐 하면 소식지에 오자나 탈자가 있을 때는 얼마를 준다고 하는 그런 것까지 자신 있게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박찬선의원님께서 반상회보에 대해서 애정과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해서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둘째로, 서초구소식지 광고게제가 담당부서의 임의대로 특정업자한테 광고를 게재해 주고 뒤에서 거래가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공무원으로는 있을 수 없는 그런 지적을 해 주셨는데 그런 증거를 저한테 제시해 주시면 그런 공무원은 우리 공직사회 대열에서 같이 행군할 수 없는 낙오병으로 제가 만들겠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6월까지 광고를 게재 신청한 업체는 총 52개 업체로서 72건의 광고가 실렸습니다. 5,000여만원의 광고를 실었는데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광고라고 하는 것은 일반회계 물품구입과 마찬가지로 일단 광고주와 광고를 세일즈 하는 저희가 제의를 해서 수락을 하면 저희가 광고를 게재하고 난 다음에 그 게재된 신문을 첨부해서 광고비를 청구하는 것이 일간신문이나 모든 신문의 통상적인 하나의 기본원칙입니다.
그런데 그 업체 중에서 4개업체가 280여만원을 지금까지 못 내고 있습니다. 그 업체중에 하나는 국보보건이라고 해서 소독업체인데 오늘까지 미루어 오고 있어서 분납까지 저희가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희 광고는 그냥 무조건 관의 힘을 빌어서 광고주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게재하는 이른바 "대포광고"는 한 건도 없습니다. 다 광고주에게 사정을 해서 승낙을 맡았을 때만 게재를 합니다.
그러나 의원님도 아시다시피 여러 가지 기업의 형편상 광고를 선뜻 내주는 데가 없어서 이 광고를 수주해 오는데 사실 동장부터 간부의 모든 사람까지 광고세일즈로 나서서 광고를 지금 받아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광고가 어떤 때는 700만원 어치가 들어올 때가 있고 어떤 때는 300만원 어치가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답변이 길어집니다만, 하나의 눈물겨운 얘기는 저희가 처음 광고를 시작할 적에 찾아갔던 데가 팔레스호텔입니다. 팔레스호텔에 광고를 요청했더니 차라리 돈을 얼마 주는 것이 낫지 보지도 않는 반상회보에 누가 광고를 부탁하겠느냐 해서 정말 돈 주는 심정으로 저희가 광고를 맡아가지고 와서 좋은 신문에 광고를 한 번 냈습니다.
그것이 연말로 기억되는데 느닷없이 큰 몇 백명의 연회를 문의하는 전화가 계속 날아 들어와서 그 팔레스호텔에서 어떻게 보고 이런 것을 물어 보느냐 했더니 반상회보에 광고란을 보니까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했노라 해서 두 건의 연회를 치르고 난 다음에 팔레스호텔 측에서 한 건만 하더라도 광고비가 빠지는데 두 건씩 서초광고지를 통해서 수주를 맡았다 해서 그 다음부터 소문이 조금씩 나서 바로 코리아나화장품에서도 그런 광고신청이 들어오고 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광고는 직원들의 어려운 광고세일즈로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네 번째로, 제작업체의 재선정으로 4월부터 400만원 또는 300만원해서 연 5,000만원의 과다지출이 된 것이 아니냐 이런 말씀이신데 지금 중앙일보의 파격적인 가격에 비해 보면 그 만큼 지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지출된 돈이 조달청 가격으로 계산해서 지출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일정한 노하우가 축적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업체선정은 그냥 단순한 가장 저렴한 가격의 업자한테 낙찰주는 것이 아니고 신문제작에 노하우가 많은 중앙일보나 이런 큼직한 데가 조금 값이 비싸더라도 신문의 모양을 위해서는 그런 데가 좋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과 아울러서 과다지출이라고 하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끝으로 광고료의 기준이 없이 강동구청에서는 일단 1행에 얼마씩 하는데 왜 여기는 없느냐 하는데 지금 광고가 넘쳐 흐르는 것이 아니고 사정사정해서 하기 때문에 뭐한 얘기로 500만원짜리, 100만원짜리도 어떤 때는 그것이라도 실으면 좋겠다 해서 덤핑으로 저희가 광고를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궤도위에 올라섰을 적에 저희가 광고에 대한 기본적인 가격을 의회에서 심의를 받겠습니다.
다만, 이런 광고를 가지고 우리 공보실 직원이나 관계 직원들이 아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뒷거래가 있다든지 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너무나 엄청난 비리이기 때문에 감사실로 하여금 철저히 조사해서 있다면 엄정 처벌할 것을 약속을 드립니다.
다음에는 서초구에 CI제작을 하지 않아서 서울시 홍보관에 게첨하지 않았다는 분노에 가득차신 말씀을 하셨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선 1기가 시작된 '95년부터 서울시를 비롯한 모든 광역단체와 248개 기초단체에서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의 엠블럼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도 근 50년 동안 사용해 왔던 휘장을 버리고 새로운 휘장을 '95년도 시장이 당선된 후부터 해 왔습니다.
저희 역시 마찬가지로 해 와 가지고 '96년 12월에 아까 지적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금강기획이 광고회사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회사중에 하나고 또 마침 그 그룹이 저희 서초에 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거기에 부탁을 해서 두 번에 걸친 기본 어느 광고 엠블럼을 만들더라도 기본자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식이라든가 여러 가지 기호를 조사한 바 있습니다.
거기에 따라서 정해진 엠블럼을 의원님들께 보고드리고 했습니다만, 너무나 금방 하기에는 우리가 신중을 기해야겠다 해서 일부 공문서라든가 계속 사용해 오면서 일반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찬사가 있었지만 얼마 지나고부터 너무 단순하고 또 단순한 것이 엠블럼의 장점이지만 너무나 칼날같이 살벌하다 해서 거기에 대한 변형을 시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제안도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제가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서울시 본관에 있는 홍보관에 게첨하는 것보다도 우리 구청에 지금 현관에 게양되어 있는 거기에 우리 엠블럼이 걸려 있지 않습니다. 또 구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사무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다 보면 이것이 한 번 확정되면 그 다음에 변경하기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1년 이상을 계속 의견수렴을 한 결과 저희 서초지역에 살고 계신 유명한 미술에 종사하시는 교수님들이나 이런 분들이 자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계속 주어왔습니다. 그래서 한달전에 새로 구상된 엠블럼을 가지고 와서 환경친화적인 자연친화적인 그리고 21세기를 향해서 뭔가 국제적인 감각에 맞는 이런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와서 다시 저희가 검토해 본 결과 상당히 먼저 것보다는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공식으로는 보고드리지 않았지만 의원님들께 한 번 간단하게 보고드린 바가 있습니다.
구청의 휘장인 엠블럼을 저희가 일단 정해지면 이것이 기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상장이라든가 우리가 주는 모든 포장지라든가 모든 가방이라든가 봉투라든가 심지어 고지서에까지 그 엠블럼을 변형하는 다목적적인 휘장으로 쓰기 때문에 제가 신중을 기하다 보니까 시기를 놓친 것 같습니다.
하여튼 정말 자랑스러운 서울의 25개구 중에 유일하게 우리가 제작을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 타구에서는 서초구의 엠블럼이 어떠한 형태로 지금 만들어 질 것인가 하고 상당히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희가 빠른 시일내에 확정을 갖는 그러한 길을 밟겠습니다.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음은 정길자의원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길자의원님께서 향토박물관이 불요불급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경에 편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향토박물관이라고 하면 저희가 지금 2000년에 들어 서서 꼭 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일 필요한 것이 앞서 말씀해 주셨다시피 도서관이고요. 두 번째는 이런 향토박물관, 세 번째는 우리가 녹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녹지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자연식물원입니다. 우리나라 향토 식물들이 지금 서울시 대공원을 가도 없고 국립식물원을 가도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구청에서부터 예술의 전당으로 해서 저쪽 사당동까지 가는 벨트에 자연식물원, 우리 고유의 식물원을 한 번 만들면 어떻겠는가 하는 말씀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꼭 지어져야 하겠지만 그 중에 도서관도 지금 많은 변경을 가져 왔습니다. 어제 신문에 보도 된 바에 의하면 일본이 2010년까지 앞으로 10년동안 일본이 추구하는 여러 가지 계획을 발표했는데 앞으로 장서를 필요로 하는 도서관은 일본에서는 필요가 없고 전부 컴퓨터로 이룩되는 컴퓨터가 장서를 대신하는 그러한 도서관의 일대 혁명을 10년 안에 거둔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희가 2000년도에 들면서 도서관 사업에 온 신경을 쓸 것입니다.
그러나 향토박물관을 저희가 착상하게 된 것은 쭉 저희가 말죽거리라고 하는 동네가 우리 서초구의 상징입니다마는 말죽거리가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가 토요어린이 학교때마다 질문을 받습니다. 말죽거리가 뭡니까? 그리고 말죽거리가 어디냐 그래서 우리 어린이들이 말죽거리라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궁금을 갖고 있고 또 어른들 역시 말죽거리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저희 양재동에 지금 사들이려고 하는 땅이 국방부 군용지입니다.
저희가 이것이 '93년부터 250평의 가장 좋은 그 땅에 무허가 건물이 한 20여채가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좀 살 수가 없을까 거기에 박물관을 지을 수가 없을까 하고 여러 번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에 요청을 할 때마다 그것은 국방부에서 쓸 땅이기 때문에 절대 팔 수가 없다고 거절을 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우연히 서초구 출신의 모국회의원이 그 당시 국방부장관과 어떠한 모임을 갖는 자리에서 저보고 국방부장관에게 꼭 서초구에서 해결할 것을 한 번 얘기해 보라 해서 두 가지가 있다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정보사 관통터널을 뚫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말죽거리에 있는 국방부 땅을 저희가 좀 불하 좀 해 주십시오 하는 그런 요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1차로 국방부에서 안된다고 하는 회신이 왔다가 다시 필요성을 그냥 단순한 향토박물관을 건립한다고 하기 보다도 정말 도서관이라든지 이런 것이 꼭 필요한데 거기야말로 한 번 그 땅을 국방부에서 타기관에 판다든지 국법에 쓴다면 다시는 말죽거리에 임하는 땅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말죽거리를 상징할 수 있는 이러한 향토 기념물을 만들겠으니까 국방부장관에서 꼭 좀 그것을 저희 서초구에 넘겨 달라고 간청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조건을 내세우기를 거기에 있는 무허가 건물도 국방부에서 철거해 주는 조건이다 했더니 뜻밖에 공문이 오고 또 장관을 통해서 국회를 통해서 연락오기를 그렇다면 이것을 향토적인 그런 기관을 짓는다면 우리가 양보를 하겠다 그대신 일시불로 달라 하는 얘기입니다. 저희가 일시불로 줄 것이 없다고 했더니 철거는 서초구에서 매입한 사람이 두번째는 5년 분할상환으로 줄 용의가 있다고 해서 그것도 금년중에 하지 않으면 자기네가 없는 것으로 하겠다 그렇게 하던 차에 국방장관 경질발령이 나니까 그것도 빨리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해서 저희가 사실 불요불급한 사업은 아닌 줄 알지만 이 땅확보 차원에서 이번 추경에 편성해서 여러분께 올린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것이 허명화의원님의 질문과 똑같은 것인데 어떤 구청장이 자기의 무슨 공적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원 여러분께서 냉철하게 판단하셔 가지고 정말 이번에 이것을 매입하지 않으면 영영 우리의 손에서 떠나는 그런 땅이라고 하는 것만 명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은 저희 심사분석 결과에 따라서 주요 사업들이 많이 변경된 것을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자세한 것은 저희 담당국장으로 하여금 상세히 보고토록 양해를 해 주시면 답변을 미루겠습니다.
다음은 장경주의원님께서 질문하신 바람골 소하천지역 공사추진에 관해서 저희가 쌓고 있는 하천의 공사방법에 대해서 너무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기 때문에 아까 점심을 먹고 들어 오는데 공원녹지과장이 현관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공무원으로서 바로 이런 것이 사기진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느낍니다.
마침 거기서 지금 총지휘하고 감독하는 사람 역시 공원녹지과의 직원인데 1차 구조조정때 어떤 기준을 설정하다가 가장 정년에 가까운 조귀호라고 하는 기능직을 인력풀에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직원이 정말 정년에 가까운 것에 대한 어떤 한풀이라도 하듯이 작년에는 원지동과 신원동에 한 1,500평 밭에 소년.소녀가정과 독거노인을 위한 배추를 심는 아이디어를 내어서 너무나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금년 역시 이 직원이 건설회사를 다니면서 꼴망태에 넣는 이러한 새로운 공사방법의 기법을 배워가지고 거기에서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토건회사들이 거기에 와서 공사방법을 거꾸로 견학을 하고 있습니다. 제일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면 공사인부 감독을 하는데 인력풀에 들어 있는 주제에 뭐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사실 눈물을 흘린다는 얘기를 듣고 저희는 연령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실력으로 하겠다 해서 그 직원은 지금부터는 인력풀 소속이 아니고 정말 태스크포스를 지금 하고 있으니까 장경주의원님의 그 격찬의 말씀에 보답하기 위해서 하여튼 머지않아 포상과 아울러 인사상의 특전을 드린다고 하는 것을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다음번에 장경주의원님께서 양재2동 지역내 초등학교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재2동의 어린이들이 그 힘든 논현로 길을 건너면서 교통사고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해서 정말 저 역시 부끄럽게 생각을 합니다.
저도 장경주의원님과 같은 작년 6월 선거에 둘이 다니면서 이것을 공약했습니다. 이것은 장경주의원님의 공약일 뿐더러 구청장의 공약이기 때문에 정말 이것을 꼭 달성해야 하겠는데 엊그제도 저희가 이상각 교육장님하고도 이 건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너무나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제가 실무자로 하여금 자세한 답변을 드리도록 하고 우선 지난번에 의원님들이 허락해서 책정해 주신 육교설치를 가지고 1차 응급대처를 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설치 관계를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허명화의원님께서 아까 말씀하신 향토박물관에 관한 질문은 먼저 정길자의원 답변으로 갈음하겠습니다.
다만, 거기에 과연 무엇을 놓겠다고 만드느냐 하는데 그때 가서 구체적인 소프트웨어는 찾아 보겠습니다마는 지난 번에 그런 얘기를 했을 때 1902년 1903년도에 우리 서초구의 변천사인 호적초본이라든지 여러 가지 희귀한 그런 사진과 자료들이 많이 저희한테 제출된 것을 보고서 우리도 찾으면 잊어 버렸던 여러 가지 이 고장의 이런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서초구청 뒤에 양재고등학교 자리가 삼봉 정도전선생의 유택이었다고 하는 그 얘기도 전례되는 얘기지만 지난번에 이것을 알아 보니까 그러한 족보와 과천군의 군지 이런 데를 보면 여러 가지 좋은 자료가 나와서 하나의 야사가 정사로도 바뀔 수 있는 그러한 것이 되지 않겠나 해서 일단 어떠한 그러한 것이 향토박물관이 서지 않더라도 서서히 저희가 자료를 모을 것을 약속을 드립니다.
다음은 미국과 유럽국가 중 프랑스와 우선적으로 수교를 맺었다고 그러시고 왜 의회와 협의없이 했느냐 하는 그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희가 국제화, 세계화 그러한 거창한 구호보다도 저희 지역에는 정말 외무부장관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어떠한 특정한 국가의 국민이 한 도시에 그것도 한 지역에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 사는 것은 서초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프랑스 국민이 프랑스 대사관 통계로는 96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
저희 반포4동과 방배본동, 4동에 442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포4동에는 프랑스학교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해서 한 300여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완전히 여기는 프랑스 조계와 같은 그런 지역으로 되어 있고 지난 번에 그 지역에서 프랑인과의 반상회때 장영화의원님께서도 나중에 합석을 해 주셨지만 거기의 음식점은 아무데나 들어가 보면 저녁에는 꼭 프랑스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음식점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데 반상회 때 나온 얘기들이 무슨 얘기가 나왔느냐 하면 정말 아파도 어떻게 어느 병원으로 가서 어떻게 진료를 받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얘기를 합니다. 처음에 무슨 얘기인가 하고 봤더니 프랑스 사람이 전부 영어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어로 아픈 증상을 호소하더라도 알아 듣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아플 적에 긴급으로 항상 대처할 수 있는 의사를 지정해 주면 좋겠다 두 번째는 그 흔한 현금인출기를 가 보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라서 그것을 프랑스 말로 물어 보면 다들 고개만 갸웃거려서 그 많은 은행가운데 현금인출기도 쓸 수가 없다 그런 여러 가지 생활 불편사항을 많이 얘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프랑스와 수교를 맺고 국교를 맺는 것이 아니고 우리 반포4동이나 방배본동에 있는 프랑스인을 위해서 가장 우리가 서초를 이해시키고 서초구정을 소개해 주고 그들의 생활불편은 해소해 주고 새로 이사오는 새로운 프랑스 세대에 재활용은 이렇게 하며, 쓰레기는 언제 쳐 가는가 하는 것을 안내할 수 있는 프랑스 책자라든지 이런 것을 만들기 위해서 자원봉사를 모집하고 또 그 분들과 얘기하다 보니까 그냥 이러기가 뭐해서 자원봉사단체인 정보센터를 만들어 가지고 열은 바 있습니다.
물론 이 사업이 지금 너무나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대사관과 외무성에서 파리의 어느 구와 우리 구가 자매결연을 알선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마는 우리는 자매결연이라고 하는 것이 서로 상호방문으로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명실공히 알차게 그 지역에 봉사하고 난 다음에 했으면 좋겠다 해서 이런 어떤 우호도시 협약을 맺을 때는 물론 의회에 승인을 거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지금 다만, 행정적인 주민 불편사항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지금 여러 가지 왕래가 있다고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은 허명화의원님께서 저 보고 말씀하시기를 선행을 이렇게 강제로 유도해서 강압적인 그러한 선행유도 하는 것이 과연 공무원으로서 할 일인가 하는 그런 뜻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정말 이 답변을 드리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선출직은 과연 이런 것인가 하는 것을 느낍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우리가 기쁜 일이라든지 즐거운 일이라든지 남에게 좋은 적선을 할 때는 그것이 할수록 늘어나고 슬픈 일이라든지 괴로운 일 이런 것은 나눌수록 작아 진다고 했습니다.
또 이 얘기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정말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적어진다고 하는 이 진리와 같은 말씀을 저는 생각하면서 저희가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떠한 적선을 한 분 스스로 얘기할 때 는 적선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웃에서 그것을 얘기 해줄 때는 정말 그 사회를 도덕사회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저희가 지금 살벌한 세상에 정말 옆에서 굶어 죽거나 괴로움을 당할 때 누가 따뜻한 인정의 손질을 뻗칠 것인가 할 때에 이것을 알면서도 안해 주는 사회가 있고 몰라서 안해 주는 사회가 있습니다.
저희 서초는 정말 늘 얘기하지만 너무나 인정이 넘치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제가 선행을 유도한다고 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해서 강압을 했으면 몰라도 서초케이블TV같은 반상회에 나가서 불특정한 다수인을 상대로 해서 결식아동을 돕겠느냐 다니엘학교의 어린이들한테 빵을 공급해 달라든지 언남초등학교 학생들한테 눈물나지 않는 텔레비전 수상기를 주어서 눈물없이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해 달라 하는 그런 호소를 할 적에 저는 조금도 양심의 어떤 거리낌이 없이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이런 호소를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는 없고 두고 왔습니다마는 저는 얼마 전에 뜻밖의 편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저희 방배동에 살고 계시는 너무나 유명한 분이지요? 문필가로 한국국제팬클럽회장인 전숙희여사가 저한테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연히 TV반상회를 보다가 서초에 굶는 학생이 있으니 이 학생들한테 따뜻한 점심 한 그릇을 보내 줄 수 없겠는가 하는 얘기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들었을 때 자기 집의 손자 손녀들이 밥을 먹다가 "할머니 우리 동네에도 굶는 아이가 있네요." 그러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저금통장의 돈을 다 털어 가지고 저한테 편지로 우송을 해 주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때는 널리 좀 알려달라 그래서 모두 다 십시일반으로 돕자는 그런 격려의 편지를 보낸바가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전숙희선생님의 두번째 편지로 돈을 보내 오시면서 여기에 살지 않고 있는 유명한 소설가들의 이름을 넣어 가지고 저한테 돈을 보내 주었습니다.
참고로 이야기를 하면 유명한 소설가인 김영일선생님, 김주영소설가, 손장순소설가, 강신재소설가, 김영희소설가 또 시인의 거두인 김남조여사, 그리고 극작가의 원로인 박현숙씨 그리고 계원예술대학장으로 있는 강영진대학장등 여러 분이 비록 많은 돈은 아닙니다만 그 돈을 모아 가지고 끊임없이 보내 줄 테니까 이런 사람들을 자꾸만 알려달라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참 과연 구청장이 자기 직위를 이용해서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못 도와주는 사람, 못 기탁하는 사람한테 아픔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사랑을 널리 알릴수록 참 좋은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베풀기도 힘들지만 베푼 사람을 인정해 가지고 널리 세상에 알리는 것이 바로 도의정치를 베푸는 하나의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러한 오해를 받았다고 그러면 제 부덕의 소치고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이웃을 돕는 그런 사랑의 운동이 도처에서 널리 퍼져나갈 것을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불충분하지만 준비된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