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서초구의원 황일근입니다.
친애하는 구민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지난달 열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초구 초유의 우면산 산사태를 생생하게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일이 수습도 되기 전에 서울시는 180억이 넘는 돈을 들여 주민투표를 강행하였고 결국 투표함을 개봉하지도 못한 채로 돈은 돈대로, 오 시장은 스스로 탄핵을 해버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누구의 승리라고도 말할 수 없는 한편의 해프닝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서울시 25개 구 중 수해 피해가 가장 컸던 서초구가 역설적으로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아이들 밥 먹는 문제에 가장 인색한 서초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로 인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역시 서초강남공화국이다’ ‘너네들끼리 벽 쌓고 살아라’ 하는 말까지 나왔고 일부에서는 이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들마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개인적으로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보편적 복지 혹은 선별적 복지라는 말들로 이미 정치권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우리 아이들의 밥상,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그 문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머리로만 생각한 것이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부자 감세는 원하면서도 부자급식을 반대하는 것은 종부세는 내기 싫지만 급식비는 꼭 내겠다는 이중 잣대라는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우리 주위에 스스로 벽을 쌓고 담을 쌓아서 남들과 다르다는 스스로의 만족감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달리 필연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경쟁이라는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승자가 되고 모든 것을 거머쥐는 승자 독식의 세상입니다.
빈부의 격차는 여러 사회적 갈등과 범죄 등의 문제를 발생시킴으로써 경제의 선순환을 막게 되고 결국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되므로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복지정책을 강화하거나 혹은 부의 사회 환원과 같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진 이들이 오히려 존경을 받는 사회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흔히들 우리나라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닌 땅불리스 돈불리제만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시기심에서 만들어낸 말이라고 쉽게 생각하게 됩니다만 여기에 관한 원론적인 논쟁은 생략하더라도 이제는 우리 서초도 한 번쯤 되돌아보며 우리 주위에 둘러싸인 장막을 걷어내고 존경받는 부자가 많이 사는 곳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서적,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를 위한 개혁의 맨 앞줄에는 현재 850억 청사건립기금 주머니를 털어서 구민회관 신축이라는 토건 몽상에 빠져있는 서초구청이 잠에서 깨어나 그 자리에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정서와 문화 등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는 힘들어도 스스로 내부로부터 생겨야 합니다.
내가 더 가졌다고 더 배웠다고 더 권력이 있다고 깔보지 않고, 내가 조금 덜 가졌고 덜 배웠고 힘이 없고 몸이 불편해도 기죽지 않고 서로 간에 존중하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우를 주고받는 따뜻한 세상이 우리 서초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연암 박지원은 인순고식 구차미봉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낡은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장의 편안함을 취하여 일이 잘못된 것을 임시변통으로 때움으로써 천하의 온갖 일이 이로부터 허물어지고 만다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허물어지고 말 것이며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이 세상은 허물어진 상태로 현재와 같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약육강식의 세상 그대로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가진 한 명의 부모로서 이 아이가 커서 지금보다 조금 따뜻한 더 나은 세상을 맞이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상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